염중호 사진전 (찬란한 도시)
염중호는 지난 4-5년간 파리, 베를린, 베오그라드, 타이베이,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20세기 도시계획자들이 현대인의 거주 환경을 조율, 통제, 구조화 하여 인위적인 삶의 방식과 질서를 세우고자 한 일의 모순과 적응의 결과를 목도하였다. 이 도시들의 모습에 염중호는 르코르뷔지에의 실패한 프로젝트로 알려진 ‘찬란한 도시’에 대한 열망을 겹쳐 보고자 한다.
염중호는 인간이 세상을 구성하고 구조화 하면서 인간 자신 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명과 사물을 끊임없이 지배 및 통제하고자 할 때 그 통제의 틀을 벗어나려는 사물과 생명의 노력들에 시선을 두어 온 사진가다. 특히 그는 도시를 거닐며 발견한 사물이나 동식물의 숨어 있는 질서를 사진으로 포착하곤 하였다. 이번 개인전 《찬란한 도시》는 염중호의 시선이 주변의 사물이나 동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꾸려가는 도시 속의 삶의 모습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도시가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나거나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향하고 있는데, 지난 수년 간 서울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작가가 포착한 사진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한 도시(Ville Radieuse)”는 르코르뷔지에가 현대 도시의 이상적 삶을 추구하며 설계한, 그러나 성사시키지 못한 대표적인 현대 도시계획으로, 후대 도시계획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과 결과는 당초의 이상과 기대와는 다르게, 주거의 경계가 사회/경제 계급에 의해서 구분되어지거나, 한때 중산층 대상으로 지어진 집합주택이지만 이주민이나 난민들에게 허용되거나 게토 상태로 방치되어 도시의 구조적 기능이 쇠락해가는 결과를 낳곤 하였다.
그러나 염중호가 이 도시들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은, 작가의 눈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도시의 회색 지대를 점유 중인 사람들의 거칠고 비참한 삶으로 보지 않고, 이들의 삶이 원래의 도시계획의 틀을 벗어나 있지만 자신들의 소소한 가꿈과 돌봄으로 인해 인간적인 면모를 유지하고 있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의 눈은 도시가 인위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고 구조화 하지만 사람들은 그 통제와 지배 방식에 쉽게 길들여지지 않고 어긋남을 만들어내는 작은 모습들을 향해 있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에 등장하는 도시의 구석구석은 자연광 아래서 밝게 빛나며, 낡았지만 소박하게 가꿔진 모습은 찬란하기까지 하다.
수백 장의 사진들의 촬영장소와 시간대는 타이베이(2019), 베를린(2019), 파리 외곽인 팡탱(2020)과 오베르빌리에(2021),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2021), 서울의 풍납동(2022)으로 이어졌다. 이 사진들은 도시를 특정하지 않는다면 분간이 안될 정도로 유사한 현대 도시의 쇠락한 모습과 사람들의 적응력을 보여주는데, 이는 모두 염중호의 직관적 관찰에 의해 포착된 장면들이다. 작가는 이 도시들에서 소소하지만 디테일한 삶의 흔적을 담담하게 포착하였고,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도시의 쇠락에는 대조적이고 역설적이게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작고 가벼운 희망 같은 것들을 향하고 있다.
한편, 서울 풍납동은 염중호의 가족이 오랫동안 거주하여 작가에게 익숙한 장소다. 이런 측면에서 풍납동 사진들에는 직관적 관찰보다는 익숙한 것에 대한 작가의 재사유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들에 대한 사진과 다소 구별된다. 풍납동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좀더 건축물의 세부를 보고자 하였고, 이것을 그는 사진의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라고 표현하였다.
“내가 하는 사진은 다큐멘터리도 저널리즘도 아니다. 연출된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조한 사진’들이다. 나는 그것들이 추상적인 풍경처럼 보일지 또는 아닐지 모르겠다. 이미지는 사물의 실체를 대변할 수 없다. 사진은 픽션이다. 나는 종종 규칙을 넘어서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소위 “좋은 사진”에 반대한다. 예술가로서 나는 나의 작업이 다른 사진가들의 작업들과 또 다른 의미들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염중호(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