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현 개인전 (있고도 없는)

전시개요
■ 전 시 명: 2025년 상반기 갤러리 도스 ‘시선 너머’ 기획공모 선정작가展
한지현 ‘있고도 없는’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
■ 전시기간: 2025. 2. 5 (수) ~ 2. 11 (화)
불확실함이 주는 잠재력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최서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유토피아는 실존하지 않는 이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상의 장소는 비현실적 특성으로 모든 이에게 갈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오랜 세월로부터 오늘날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이념으로 다수 차용되어 왔다. 반면 헤테로토피아는 실제로 존재하되 물리적 공간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주장하는 푸코의 철학적 논지이다. 이는 현실적 장소에 반(反)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유토피아와 다른 차원의 양상을 보인다. 한지현 작가는 헤테로토피아의 정의와 개념에 입각하여 작품과 밀접한 공통점을 모색하고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이면의 성질을 주목한다. 나아가 만질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의 피상적 의의를 넘어 육안으로 나타나지 않는 가망성을 아울러 조명한다. 작가는 쉽게 인지하지 못하기에 관심 또한 받지 못하는 공간의 여타적인 속성을 발견하고 어떤 특이점을 지니든 전부 잠재적으로 열려있음을 작품을 통해 함의한다.
작품에서 알 수 있는 개별적 물체 또는 물체의 조합은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과 동시에 이색적인 균형이 느껴진다. 작가는 현실에서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잘 쓰이지 않아 고립된 곳을 살핀다. 이는 노력하면 분명 발견할 수 있지만 누구도 애써 가보거나 탐색하지 않는 장소이며 접근 금지가 될 만한 결격 사유가 없음에도 그저 공간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어떠한 장소와 터가 지니고 있는 표면적 성질에서 우리는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유추할 매개를 찾는다. 하지만 그 자리가 발생한 과정과 원인 또는 위치한 물건의 존속 시간과 같은 정보를 아주 분명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작가는 모호해진 경계와 지형지물에서 명백한 데이터에 집착하기보다는 외려 명확하지 않으므로 더욱 다양한 변수를 재고할 수 있는 여지에 초점을 맞추어 시각적으로 구축한다. 또한 고고학에서 파악하는 접근과 같이 공간에서 파생된 개체들을 자료로 참고하여 장소의 해석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고 내재된 불확실성을 미루어 짐작한다. 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모형은 본래의 서사와 단절되며 추론이 가능한 범위를 갈수록 증폭시키고 정체성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즉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곳이 혹은 이 사물이 과연 현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과장과 왜곡으로 후처리가 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독립성과 특수성이다. 작가는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맥락으로 현실의 장소를 인지하되 주변의 곳과 뚜렷한 차이를 만들며 작업의 핵심적 취지인 ‘있고도 없는’ 공간을 공유한다.
작품은 연구하고자 하는 곳에서 직접 확보한 자료들을 손수 기록하고 정리하며 작업의 초석을 다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관된 기록물은 공간의 존재 의의와 소재를 다중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발판으로, 채워지지 못한 기억의 결핍을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작가가 결합하고 해체하여 나누어진 여러 조각의 형태는 장소의 실재와 현실성이 함께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유래하는 풍부한 가설을 제공한다. 작품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입증 가능한 출처에서 기인하지만 초현실과 추상의 형태가 공존한다. 간파한 정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여백을 국한된 기준이나 조건 없이 작가가 지향한 상상의 범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말 그대로 있고도 없는 지도인 것이다.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불가능할 것도 억제할 것도 없이 무한한 영역을 누비는 개체들은 온갖 다채로운 물성으로 거듭난다.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전부 허용하는 이번 전시에서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곳을 눈여겨보며 자신만의 새 지도를 꾸려보기를 바란다.